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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거부하는 다이버 워치, 브라이틀링

SUPEROCEAN, BREITLING

 


슈퍼오션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1950년대는 다이버 워치의 여명기였다. 스쿠버다이빙을 비롯한 해양 스포츠가 유행했고, 사람들은 바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시계를 원했다. 블랑팡, 롤렉스 등 몇몇 브랜드가 이런 요구에 동참해 다이버 워치를 선보였고, 브라이틀링 역시 1950년대 후반 그 대열에 동참했다. 1957년 200m 방수 기능을 갖춘 다이버 워치 ‘슈퍼오션’을 출시한 것이다. 크로노그래프 워치의 개척자답게 당시 브라이틀링은 타임 온리 모델(Ref. 1004)과 크로노그래프 모델(Ref. 807)을 동시에 선보였다. 디자인도 차별화했다. 큰 원형 및 삼각형 아워 마커로 가독성을 극대화했고, 안쪽으로 경사진 회전 베젤을 적용해 독특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렇게 슈퍼오션은 태생부터 개성이 넘쳤고, 이런 특성은 후속 모델에도 이어졌다. 특히 1965년에 출시한 슈퍼오션 슬로-모션(Ref. 2005)은 다른 어떤 시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과 메커니즘을 품었다. 브라이틀링은 다이버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큰 관계가 없는 요소를 제거하고, 보다 단순하게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구현하고자 했다. 기존 크로노그래프 워치는 서브 다이얼의 분 단위 카운터가 너무 작아 물속에서 시간 정보를 읽기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이버에게 크게 필요하지 않은 중앙 초침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경과 시간을 계측할 수 있는 독특한 핸즈를 배치했다.


중앙 핸즈가 1분에 1회전하는 일반적인 크로노그래프 워치와 달리 슈퍼 오션 슬로-모션은 이름처럼 천천히 1시간에 1회전했다. 하나의 핸즈로 60분 동안 계측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워치를 구현한 것이다. 하지만 핸즈가 매우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브라이틀링은 시계의 작동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6시 방향에 별도의 인디케이터를 배치했다. 이렇게 완성된 슈퍼오션 슬로-모션은 수많은 당대 다이버 워치 중에서도 가장 유니크한 타임피스가 될 수 있었다.




(좌) 1957년 슈퍼오션 광고 이미지 (우) 1965년 슈퍼오션 슬로-모션 광고 이미지
빈티지 슈퍼오션 크로노그래프 모델(Ref. 807)


다이버 워치의 본질에 다가서다


올해 브라이틀링은 완전히 새로운 슈퍼오션을 선보였다. 최신 제품이지만 디자인은 과거에서 가져왔다. 바로 1965년 출시된 슈퍼오션 슬로-모션이다. 그중에서도 1970년에 출시된 버전이 이번 슈퍼오션 디자인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었다. 신형 슈퍼오션은 구형 모델에 비해 디자인은 물론 소재 및 두께 등 여러 부분에 변화를 주었다. 36mm부터 46mm까지 다양한 사이즈를 제공하는 것은 기존과 동일하지만 모든 제품군에서 두께를 줄인 덕분에 착용감이 꽤 향상되었다. 방수 성능은 사이즈에 관계없이 300m를 지원하도록 변경되었

다. 일부 모델에서 방수 성능이 낮아지긴 했지만 일반적인 다이버 워치 기준에서는 충분한 수준이다.


케이스의 디테일도 좋아졌다. 전체적인 형상은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러그 모서리나 미들 케이스 하단에 유광 피니싱을 추가하는 등 미세한 변화를 주었다. 덕분에 간단한 터치로 시계가 더 고급스러워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다이얼에서 날짜창이 사라졌다는 것. 이는 과거 슈퍼오션 슬로-모션의 디자인을 반영한 것으로, 다이버 워치의 본질에 더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날짜창이 없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시계가 자주 멈추는 경우 오히려 환영할 만한 변화다. 단방향 회전 베젤에는 슈퍼오션 컬렉션 최초로 세라믹 인

서트를 적용했다. 베젤 주위의 요철 간격도 넓어졌고, 그에 따라 그립감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베젤의 회전 질감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맞물리는 느낌이 일품이다. 브라이틀링 특유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설정이다.



슈퍼오션 오토매틱 44

Ref. A17376211B1A1

지름 44mm

케이스 스틸, 30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셀프 와인딩, 칼리버 B17, 38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회전 베젤

다이얼 블랙

스트랩 스틸 브레이슬릿

슈퍼오션 오토매틱 42

Ref. A17375E71C1S1

지름 42mm

케이스 스틸, 30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셀프 와인딩, 칼리버 B17, 38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회전 베젤

다이얼 블루

스트랩 블루 러버



작은 다이얼, 강한 응집력


다이얼은 1970년 등장한 슈퍼오션 슬로-모션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 다만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타임 온리 기능으로 바꾸면서 몇몇 요소가 변경되었다. 과거 모델에서 9시 방향에 있던 서브 다이얼이 사라졌고, 끝부분에 정사각형을 더한 독특한 크로노그래프 핸즈는 미닛 핸즈로 변경되었다. 옛 모델을 복각하면서 로고 역시 날개 로고에서 ‘B’ 로고로 바뀌었다. 전문 장비 이미지에서 조금은 힘을 뺀 느낌이라 편안하게 다가온다. 중앙 다이얼은 마치 거울처럼 눈부신 광택이 인상적이다. 선버스트 피니싱 같은 화려한 피니싱을 배제하고 심플하게 광택만 더했는데, 그 깊이감은 블랙 컬러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기존의 거친 무광 다이얼과 화려한 유광 다이얼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은 것 같다. 반짝이지만 스스로를 과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입체적인 사각형 인덱스는 아플리케 기법으로 붙여서 완성했고, 모서리를 하나하나 사선으로 깎아내 날카로운 빛 반사를 유도했다.


신형 슈퍼오션은 다이얼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매우 독특하다. 가장 큰 이유는 중앙 다이얼 바깥쪽 분 단위 챕터 링의 면적 때문이다. 일반적인 시계보다 챕터 링 면적이 넓은 데다 중앙 다이얼과 컬러가 달라서 자동차 바퀴를 연상시킨다. 이 챕터 링의 면적으로 중앙 다이얼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아졌고, 핸즈도 극단적으로 짧아졌다. 좁은 중앙 다이얼에 큼직한 사각형 아워 마커, 굵고 짧은 핸즈가 모이면서 강한 응집력이 발생하는데, 이는 시계에 단단하고 강인한 인상을 부여한다. 이토록 개성 있는 다이버 워치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완전히 새로워진 브레이슬릿


신형 슈퍼오션은 본체는 물론, 메탈 브레이슬릿과 러버 스트랩, 그리고 디 버클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 요소를 새롭게 설계·제작했다. 메탈 브레이슬릿은 브랜드 특유의 비스듬한 사선 형태를 유지했다. 이 독특한 3열 브레이슬릿은 점점 얇아지는 손목 라인을 따라 자연스럽게 감기는 효과가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강인하고 남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깥쪽 2개 파츠는 무광 피니싱, 가운데 파츠는 유광 피니싱으로 마무리했다. 브레이슬릿의 편의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푸시 버튼으로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는 폴딩 클래스프를 새롭게

적용했는데, 최대 15mm까지 원터치로 미세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단단하게 작동하는 메커니즘에서 신뢰성이 느껴진다.


러버 스트랩 역시 달라졌다. 기존에는 브랜드 로고를 크게 각인했지만, 이번 러버 스트랩은 화려한 치장보다 정석을 택했다. 스트랩 양쪽으로 패브릭 스트랩이 연상되는 미세한 패턴이 들어갔는데, 실제 패브릭 같은 촉감이 일품이다. 여러모로 잘 가공한 러버 스트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디 버클 역시 새로운 러버 스트랩과 어울리도록 디자인을 변경하되 미세 조정 기능 등 조작 편의성은 유지했다. 다만 퀵 체인지 기능이 빠진 것은 여전히 아쉽다. 아마도 다이버 워치의 성격에 맞게 고정성에 무게를 둔 것 같다.


겉모습은 크게 달라졌지만 심장은 바뀌지 않았다. B17 무브먼트는 크로노미터 등급의 ETA 2824-2를 기반으로 한 브라이틀링의 주력 무브먼트다. ETA 2824-2는 수동 무브먼트에 오토매틱 모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다른 범용 무브먼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내구성과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브라이틀링이 추구하는 전문 장비에 좀 더 부합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브라이틀링의 모든 제품이 COSC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다만 파워 리저브는 38시간으로 짧은 편이다.



과거의 헤리티지와 현대적인 소재의 만남


오랫동안 슈퍼오션은 성능 중심의 전문 다이버 워치를 지향해왔다. 이런 경향은 슈퍼오션 헤리티지를 출시한 이후 더 극명해졌다. 즉 슈퍼오션 헤리티지는 과거의 디자인에 세라믹 베젤을 결합해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워치로 포지셔닝하고, 그 대척점에서 슈퍼오션을 현대적인 디자인의 터프하고 강인한 고성능 워치로 포지셔닝한 것이다. 하지만 신형 슈퍼오션에서는 두 타임피스의 간극이 다소 줄어든 것 같다. 이제는 슈퍼오션에서도 반짝이는 유광 다이얼과 세라믹 베젤을 통해 화려함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바다와 같은 아웃도어

는 물론, 사무실이나 파티 장소에서도 위화감 없이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슈퍼오션 헤리티지와 슈퍼오션, 두 모델 모두 과거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도 전략적으로 큰 변화다. 슈퍼오션 헤리티지는 1957년 모델을, 슈퍼오션은 1965년 모델을 반영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브라이틀링 다이버 워치의 유산이 현행 슈퍼오션 컬렉션을 통해 재현되는 셈이다.


신형 슈퍼오션은 과거의 디자인을 재해석하면서 현대적인 소재와 공법을 적용했다. 그 결과 세련되면서도 한편으로는 1960년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다이버 워치가 탄생했다. 게다가 300m 방수 성능에 비교적 얇은 두께는 실사용 영역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평범한 다이버 워치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이번 신형 슈퍼오션은 거부하기 힘든 선택지가 될 것이다. 이제 브라이틀링에 남은 숙제는 하나다. 과거 슈퍼오션 슬로-모션의 독특한 크로노그래프 메커니즘을 현대적인 기술로 재현하는 슈퍼오션 슬로-모션 크로노그래프 모델을 출시하는 것. 그때까지는 신형 슈퍼오션이 멋진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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