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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건축학 개론, 불가리

BVLGARI OCTO ROMA


 


리모델링을 마친 옥토 로마가 보다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불가리가 쌓아 올린 시간의 건축물을 찾아서.


시계업계에는 워치와 주얼리를 겸하는 브랜드가 많다. 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워치메이킹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불가리는 주얼리만큼이나 워치메이킹에도 진심이다. 특히 울트라-신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으로 분야별 울트라-신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는데, 이는 역사상 어떤 워치 브랜드에서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다. 불가리의 옥토 컬렉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이 궁극의 얇은 두께로 울트라-신의 미학을 보여준다면, 옥토 로마는 팔각 케이스의 형태감과 볼륨감을 강조한다. 두께만 놓고 보면 마치 등급을 구분해놓은 것 같지만, 사실 두 컬렉션 모두 각각의 장점과 개성이 있다. 오히려 다양한 하이 컴플리케이션을 구현하기에는 넓은 공간을 갖춘 옥토 로마가 훨씬 유리하다. 2023년 워치스 & 원더스 기간 중 불가리는 4피스의 투르비용 모델을 포함해 완전히 새로운 옥토 로마 컬렉션을 선보였다.






옥토 로마 오토매틱

Ref. 103739


지름 41mm

케이스 스틸, 10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오토매틱 칼리버 BVL 191, 약 42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날짜

다이얼 블루

스트랩 스틸 브레이슬릿



불가리 워치의 태동


불가리의 시계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초 손목시계가 대중화되면서 불가리 역시 1920년대부터 여성용 주얼리 워치를 선보였는데, 당시 예거 르쿨트르,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등 여러 워치 브랜드에서 무브먼트를 공급받아 금속 및 보석 세공 기술을 더해 시계를 제작했다. 당시에는 두 브랜드명을 함께 표기한 더블 브랜드 제품도 있었다. 또 1940년대에는 세르펜티 컬렉션을 론칭하고 관련 워치도 다수 선보였다. 메종의 시계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1970년대부터다. 불가리는 1975년 고대 로마 동전에서 영감을 얻은 불가리 로마 워치를 출시했다. 이 디지털(!) 시계는 당시 VIP 고객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100피스만 제작되었고, 같은 해 아날로그 버전으로도 제작되었다. 이 시계의 디자인은 1977년 불가리 불가리 워치로 계승되었는데, 이는 불가리에서 대규모로 생산된 최초의 남성 워치다. 12시와 6시 방향에 위치한 슬림한 아라비아숫자 인덱스, 그리고 불가리 로고를 각인한 베젤 등은 이후 불가리 워치의 핵심 디자인 요소로 발전했다.



왼쪽부터 옥토 로마 오토매틱 블루 다이얼, 안트라사이트 다이얼, 화이트 다이얼

옥토 로마 스케치


옥토 컬렉션의 탄생과 진화


원래 옥토 워치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가 자신의 브랜드를 창립한 이후 디자인한 시계다. 팔각형 디자인의 장인답게 젠타는 원형 베젤에 여러 층으로 구성된 팔각 케이스 형태로 옥토를 디자인했다. 이름 또한 ‘8’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otto’에서 파생된 것. 2000년 불가리가 제랄드 젠타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옥토 컬렉션은 불가리에 편입되었다. 그해 제랄드 젠타와 다니엘 로스를 인수해 두 브랜드의 워치메이킹 기술을 내재화한 불가리는 이후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나갔다. 2005년부터 다이얼, 브레이슬릿, 케이스 제조 회사를 차례로 인수해 2010년 매뉴팩처 통합을 완료하고, 제랄드 젠타와 다니엘 로스의 유산을 불가리 컬렉션에 통합하기 시작했다. 2012년 불가리의 이름으로 출시된 옥토는 매뉴팩처 통합 후 선보인 새로운 아이코닉 컬렉션이다. 이름과 팔각형 모티브는 젠타의 작품에서 가져왔으나, 디자인은 불가리의 이탈리아 감성을 토대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다. 직접적인 디자인 모티브는 고대 로마 건축물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내벽에 새겨진 팔각 무늬다. 첫 작품 옥토 솔로 템포는 110개의 단면으로 구성된 입체적인 팔각 케이스가 특징으로 2개의 배럴을 갖춘 인하우스 칼리버 BVL 193을 장착해 고급 시계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어서 2014년에는 옥토 피니씨모를 론칭하면서 기계식 시계의 장르별 울트라-신 영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2017년 선보인 옥토 로마는 옥토 솔로 템포를 보다 간결하게 표현한 시계다. 110개의 단면을 58개로 줄여서 보다 심플하고 부드러운 형태감을 추구한 것. 그리고 지난해 2세대가 등장하면서 옥토 로마는 옥토 피니씨모와 함께 불가리를 대표하는 시계로 거듭나게 되었다.




기교가 많지만 정제된


태생적으로 옥토 로마는 옥토 피니씨모와 늘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다 보니 9.15mm의 객관적으로 꽤 얇은 두께에도 업계 최고 수준의 ‘넘사벽’ 형제 때문에 손해를 보는 듯하다. 두 시계는 서로 장단점이 명확하다. 옥토 피니씨모는 엄청나게 얇은 두께와 가벼운 무게가 특징이지만 일반적인 시계의 감각은 아니다. 개성 넘치고 특별하나 누군가에게는 어색할 수 있다. 반면 옥토 로마는 그보다 훨씬 포용적이다. 적절한 두께와 형태감은 익숙한 감각 속에서 기분 좋은 착용감을 선사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단면이 여러 개인 옥토 로마는 기교가 많음에도 매우 정제되어 있다. 이러한 균형감은 팔각형 베젤에 라운드 베젤을 절묘하게 조합했기 때문이다. 이 시계에서 팔각형은 라운드 베젤 안쪽과 바깥쪽에 이중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팔각 조형물 사이에 라운드 형태를 올리면서 8개의 각진 면이 착시를 일으키며 미묘하게 부드러워진다. 58개의 단면으로 이루어진 시계가 담백해 보이는 이유다. 불가리의 표현대로라면 ‘클래식하면서도 그렇지 않은(classic-yet-not-quite)’ 디자인이다. 특히 리뉴얼된 옥토 로마는 각 단면의 모서리를 기존보다 부드럽게 가공해 유려함을 살렸다. 라운드 베젤을 중심으로 다양한 선과 면이 만나며 입체적으로 쌓아 올려진 모습은 마치 건축물 같은 느낌을 준다. 시계 디자인을 논할 때 흔히 ‘건축학적(architectural)’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옥토 로마는 이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계 중 하나다. 크라운 가드 역시 팔각 케이스의 아우트라인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고, 크라운은 스크루다운 방식으로 100m 방수를 완벽하게 보장한다.






41mm의 오토매틱, 42mm의 크로노그래프


다이얼은 케이스 형태와 동일한 팔각형이다. 이번 신작에서는 무광 피니싱에 클루 드 파리 패턴을 넣었고, 핸즈는 물론 아워 마커와 아라비아숫자 인덱스에 모두 슈퍼루미노바Ⓡ를 코팅해 가독성을 높였다. 기존 옥토 로마에 비해 스포티하면서 개성도 강해졌다. 아워 마커는 위치에 따라 끝부분을 조금씩 깎아내 다이얼 중심에서도 가상의 팔각형 실루엣이 그려지도록 했다. 신형 옥토 로마의 엔트리 라인은 3핸즈 오토매틱 모델과 크로노그래프 모델로 출시되었다. 오토매틱 모델은 지름 41mm 케이스에 양방향 로터를 갖춘 인하우스 칼리버 BVL 191을 탑재했다. 3시 방향에 데이트 창이 위치하는데, 최대한 작게 디자인해 인덱스의 라인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다이얼 컬러 옵션은 블루, 화이트, 앤트러사이트, 세 가지. 칼리버 BVL 399를 탑재한 크로노그래프 모델은 두께가 12.4mm이며, 케이스 지름도 42mm로 오토매틱 모델보다 1mm 더 크다. 하지만 크로노그래프 스포츠 워치로서는 충분히 콤팩트한 수준이다. 가격 차이도 크지 않은 편이라 크로노그래프 모델을 좋아한다면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다. 다이얼 컬러는 블루와 블랙, 두 가지로 선보이는데, 블랙 컬러는 현재 크로노그래프 모델에서만 선택 가능하다. 크로노그래프 푸셔를 팔각 형태 안에 교묘하게 숨겼다는 점도 시계의 개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시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이얼과 푸셔의 부조화를 눈치채고 분명히 말을 걸어올 것이다. 어떤 물건이든 의외성은 늘 보는 이에게 재미를 준다.




최고 수준의 스트랩 교체 시스템


자연스럽게 팔목에 감기는 브레이슬릿도 옥토 컬렉션의 장점이다. 얇은 ‘ㄷ’ 자 형태의 단일 파츠를 연결한 형태로, 엔드 피스를 팔각 케이스와 연결해 최대한 일체형 브레이슬릿 느낌을 구현했다. 파츠 간격이 촘촘하고 부드럽게 휘어 착용감이 무척 좋은 편. 신형 옥토 로마에는 원터치로 편리하게 스트랩을 바꿀 수 있는 교체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같은 LVMH 그룹의 제니스에서 사용하는 방식과 거의 동일한데, 다른 경쟁사의 스트랩 교체 시스템과 비교해보면 교체 속도와 편의성 측면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다. 케이스 안쪽 2개의 고정 장치로 결합하는데, 별도의 조작 없이 스트랩을 곧바로 체결할 수 있고, 버튼 하나로 순식간에 분리할 수 있다. 전용 스트랩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브레이슬릿은 물론 불가리에서 제공하는 러버 스트랩과 가죽 스트랩의 퀄리티가 뛰어나기 때문에 딱히 불만은 없다. 구입 시 함께 제공하는 러버 스트랩에는 다이얼과 동일한 패턴을 적용했고, 러그 형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일체감을 준다. 물론 무게 면에서도 매우 가벼워지기 때문에 활동량이 많은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다.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도 그만이며, 화이트 다이얼을 선택하면 다양한 컬러의 스트랩을 즐기기에 더욱 좋을 것이다.




정확한 비례로 완성한 시간의 건축물


옥토 로마는 사실상 제랄드 젠타의 적통이다. 불가리가 그의 브랜드를 흡수하면서 ‘옥토’라는 이름과 디자인을 계승했기 때문. 젠타의 영향을 일부 받았지만 옥토 로마는 이탈리아 감각을 더한 불가리의 고유의 작품이다. 수많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낸 정확한 비례는 시계의 건축적 미학을 배가한다. 이는 이탈리아 건축물의 특징이기도 한데, 시계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 떠오른다. 이번 옥토 로마는 더 부드러워진 케이스의 형태감, 다이얼 질감과 피니싱의 변화, 스트랩 교체 시스템 적용 등 많은 부분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했다. 불가리의 차세대 주력 워치로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다. 이 시계의 장점은 화려하면서도 진중하다는 것이다. 매우 대담하고 스포티하지만, 한편으로 클래식하다.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활약할 수 있는 올라운더 플레이어를 원한다면 이제 불가리의 건축학개론을 수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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